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헨리 리 루카스 (문단 편집) == 경찰의 막장수사 == 전설적인 [[프로파일러|범죄 심리분석관]]인 [[로버트 K. 레슬러]]조차 그가 1975년 이후 5명 정도를 살해했으며 나머지 자백은 "즐기기 위해서 그리고 경찰이 얼마나 멍청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로버트 레슬러는 자신의 책에서 헨리가 그렇게 수많은 범죄의 범인을 자처한 이유로 다른 주의 관할서에서 심문을 받기 위해 이송을 거듭하면서 바깥 공기도 쐬고, 식당 음식도 먹고 하는 걸 즐기다 보니 무작정 자백을 일삼았다고 봤다. 레슬러는 루카스를 떠보기 위해 당시 화제가 되었던 짐 존스의 [[인민사원 집단자살 사건]]을 두고 이것도 당신이 했느냐는 낚싯밥을 던졌고, 루카스는 [[가이아나]]가 어딘지도 모르는 주제에 물론 자기가 한 짓이라고 거짓으로 자백하면서 훌륭하게 떡밥을 물었다. 그리고 추가 조사 결과 그가 자백한 사건 및 인정한 사건의 대부분은 거짓말이었다. 헨리에게 수백명을 죽였다는 자백을 받은 수사 과정 자체가 아주 비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 텍사스 레인저 산하에 만들어진 태스크포스에서 헨리의 신병을 장악해두고, 미국 전국의 경찰들이 미제사건 파일을 들고 와서 불과 20~30분동안 헨리에게 자백을 받는 식이었다. 과학수사가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는 범인의 자백이 아주 중요한 증거로 여겨졌고, 헨리의 자백은 지나칠 정도로 자세했기 때문에 경찰들은 헨리의 자백을 믿었다. 정확히는 믿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미국 전국에 걸쳐 200여건의 미제 살인사건이 헨리에게 떠넘겨졌다. 아이큐가 80대였던 헨리는 자신이 자백함으로 인해 경찰들의 자신에 대한 대우가 엄청나게 좋아지고[* 자백을 한 번 할 때마다 딸기맛 [[밀크셰이크]]를 사줬다고 한다.][* 60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로 알려져 교도소에서 아무도 그를 건들지 않았다. 또한 경찰 수사에 협조적이었으며 교도관들과 신뢰를 쌓아 교도소 밖으로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었다. 보통 이런 경우 그대로 도망가 버릴 텐데 헨리는 꼬박꼬박 교도소로 복귀하였다. 심지어 교도소 밖으로 나온 그를 보고 사람들이 사인을 요구했고, 헨리는 기꺼이 해주었다.] 언론의 관심도 받게 되자, "경찰이 원하는" 대답을 마구 쏟아냈다. 경찰은 경찰대로 헨리에게 원하는 대답을 얻어내기 위해 그의 심리를 조종하고 미리 현장 사진을 보여주는 등 대답을 유도했다. 경찰은 헨리가 "독살을 제외한 모든 수법으로" 사람들을 죽였으며, 어떠한 물적 증거도 남기지 않은 용의주도한 살인마라고 선전했다.[* 뒤에 밝혀진 일이지만, 아무 사건이나 다 뒤집어 씌었으니 모든 수법을 사용한 것이 되었고, 사실 범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증거도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1983년에는 경찰의 아들이 살인죄로 1심 유죄를 선고받자 살인범의 아버지인 경찰에게 청탁을 받고 헨리에게 거짓자백을 받아 아들을 2심 무죄로 빼낸 사건도 있었다. 가장 먼저 비상식적인 것을 눈치챈 것은 피해자 데비 윌리엄슨(Debbie Williamson)의 유가족이었다. 헨리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와 피해자를 죽였다고 자백했는데, 당시 그 문은 장롱으로 막혀 있어서 사람이 드나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은 유가족의 의혹 제기를 무시했다. [[테드 번디]]를 인터뷰해서 유명해진 언론인 휴 에인스워스(Hugh Aynesworth)도 헨리의 행적을 직접 추적해서, 헨리가 사용한 수표, 경범죄 전과, 모텔 숙박부 등의 기록을 수집한 뒤, 그것을 텍사스 레인저에서 발표한 헨리의 범죄 타임라인과 비교했다. 텍사스 레인저는 헨리가 방랑자(Drifter) 타입의 살인자로, 간선도로를 타고 이동하면서 만나는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죽였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에인스워스는 자신이 추적한 헨리의 실제 행적과 텍사스 레인저가 발표한 행적이[* 10월 2일 워싱턴주에서 살인 → 3200 킬로미터를 달려 → 10월 4일 텍사스에서 납치미수 → 1000 킬로미터를 달려 → 10월 7일 아칸소에서 살인 → 1500 킬로미터를 달려 → 10월 16일 뉴멕시코에서 살인 → 1600 킬로미터를 달려 → 10월 27일 네바다에서 살인 → 2600 킬로미터를 달려 → 10월 29일 루이지애나에서 살인 → 3400 킬로미터를 가서 10월 31일 워싱턴에서 살인] 도저히 일치할 수 없음을 발견했다. 웨이코 지방검사 빅 피젤(Vic Feazell)은 제도권에서 헨리 사건에 대한 의문을 처음 제기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관할 지역의 경찰들이 가져온 헨리 사건들을 살펴보고, 헨리의 자백에 허점이 많은 것을 발견하여 기소를 거부했다. 에인스워스가 찾은 자료까지 알게 된 피젤은 보통 일이 아님을 알고 역으로 헨리의 위증죄를 심리하는 대배심을 요구했다. 이에 텍사스 레인저와 그 수장 제임스 애덤스는[* FBI 차장 출신으로, [[에드거 후버]] 밑에서 사찰업무에 종사했다.] 피젤을 도청하고 협박했으며, 그를 뇌물 혐의로 기소했다. 피젤은 뇌물 혐의 건을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정치생명이 끝장나 검사직에서 사퇴했고 가정도 파탄났다.[* 미국에서 검사는 선출직이다. 훗날 피젤은 자신을 공격한 방송사인 WFAA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승소하여 엄청난 규모의 합의금을 받아내어 억울함을 풀게되었다. 이후 피젤은 개인 법률 사무소를 차린다.] 한편, 경찰 안에서도 댈러스 경찰국 같은 경우에는 레인저의 자백 수사가 순 엉터리였음을 피젤과 비슷하게 간파했다. 댈러스 최초의 여자 강력반 형사였던 린다 어윈(Linda Erwin)은 엉터리 사건 파일을 만들어 그것을 헨리에게 보여주자, 헨리가 그 자리에서 자백하는 것을 보고 헨리의 자백에 신빙성이 없음을 깨달았다. 어쨌거나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연쇄살인범이라고 확신한 텍사스 경찰은 텍사스에서 그가 저질렀다고 자백한 11건의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다른 사건들은 유기징역과 종신형이 선고되었고, 소위 "주황색 양말 사건"으로 알려진 변사체 사건으로[* 피해자 이름은 데브라 잭슨이었고, 이 시점에서는 신원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2019년이 되어서야 유전자 기술 발전으로 신원이 밝혀졌다.] 헨리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